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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글] 장해성-나와 연변축구, 그리고 연변축구구락부 운영에 대한 제언

  • LV 3 chco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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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9 12:15

 쉼터에 얼마만에 들려보고 또 쉼터체험기에 머물어 보는지,, 이젠 한 10여년은 될것같다...

쉼터도 리얼 오픈하고, 무지개잡지는 지금도 살아숨쉬고 있는지... 다 그립다..

 

그시적의 재일친구들이 아직 얼마  일본에 남아 분투하는 매일을 보내고 있을지.. 주말의 여유로 칼럼을 오려보다가

일본친구들도 생각나고,,, 쉼터도 생각나고 해서,,, 심심으로 읽어주삼..

사진보고 본인을 알아보는 이들이 계시다면 그건 너무 대박이고,,,ㅎㅎ

링크에 위챗에 들어가면 본 응모글에 리플도 가능하고 추천도 가능,,,  좋은 하루 되세요..

 

http://mp.weixin.qq.com/s?__biz=MzA4NzA1ODYxMA==&mid=400552623&idx=4&sn=c24d9eb81b32d29091938aed046295ec&scene=1&srcid=1108nLywRQ45zeFfgV1qYYZq&key=b410d3164f5f798e3baffba364a82916ea2552bf4d0d9920c08dc3b619611cff46b86dd09381a5c8d4a08580efb94520&ascene=1&uin=MjkzMjk3OTIyMw%3D%3D&devicetype=Windows+7&version=61050016&pass_ticket=EFNYIIc9gBnTWa%2BsCB3oleGSvldr4M9b5fVvHeIGr8UzSdO1UT39LN5Zbrc4mU4I 

 

[응모글] 장해성-나와 연변축구, 그리고 연변축구구락부 운영에 대한 제언

 

조선족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축구스타가 되는 꿈을 꾸어보았을것이다. 그라운드를 누벼가며 우왕좌왕 돌진해나가다가 멋들어지게 슛!! 그리고 승리의 포즈를 멋지게 취하는, 말하자면 “쏘린쓰”나 “훠왠쟈”가 동네방네 애들의 어린 동심을 들먹이던 시절에 두눈을 지긋이 감고 그려보곤 했던 천하의 무림고수꿈 같은 그런 스타꿈을 말이다.

나는 개구쟁이 시절부터 주변의 애들과 웃고 떠들며 참여하는 멋으로 축구와의 인연을 맺어왔다. 그러나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네알배기”인데다 왼발잡이로 태여나 축구스타가 되기에는 “선천부족”이었다. 나의 스타꿈은 그렇게 소년시절의 무림고수꿈과 함께 아침안개처럼 표연히 사라지게 되었다.

대학시절에는 조선족이 축구를 못한다는게 말이 되냐고 야단치시면서 계주임선생님이 기어코 학교내의 학부별 축구시합에 내보내는 바람에 방어수로 어정어정 뛰어다니던 중에 자기편 꼴문을 앞두고 헛발질해서 하마트면 오운꼴을 터뜨릴뻔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당시에 계주임선생님도 너무나 한심한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돌아섰었다. 그래도 아직 중년의 나이에 마음은 낡지 않아서, 시퍼런 대낮에 주택가의 아동공원에서 해수욕을 꿈꾸는 싸이의 “강남아저씨”처럼 중년의 축구스타가 되는 “남가일몽”도 가끔씩 꾸고 있다.

이렇게 축구와의 연정을 맺어오던 내가 어떤 계기로 연변축구에 ‘쟁개비열정’으로 정열을 쏟아붓게 되였고 또 식어버렸다가 다시 끓어오르게 되였던가. 마음속 깊은 곳에 두툼하게 먼지가 쌓여 팽개쳐졌던 기억의 보따리를 뒤적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어본다.

생각해보면 90년대 중반, 갓 대학을 졸업하고 혈기왕성한 나이에 건축현장을 누비던 시절, 최은택 교수님의 지도하에 연변오동팀열풍이 현상급(现象级)으로 중국축구무대에 선풍을 불어 일으키던 그때나도 어정쩡하게 유행을 따라서 연변오동팀을 응원하는 팬대렬에 합류하게 되였다. 여담이지만, 아직 누구에게도 꺼낸적 없이 혼자만 은근히 흐뭇해하곤하던 일이 있는데, 내가 처음으로 기술총책을 맡고 건설하고 있던 주택항목 건설현장으로 우리의 조선족 축구명장 고종훈씨가 아파트를 사러 다녀왔고, 또 고맙게도 한채 구입하여 지금도 그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연변축구에 무지 공헌하고 있구나 하는 자부감으로 마음 한구석이 볼롱볼롱 끓어오르기도 한다. 창피한 얘기지만 고종훈씨가 방문한 그날 사실은 공정부 경리님이 먼저 고종훈씨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해서 나도 비로소 알아보았다. 그때까지 연변축구팬으로서의 나의 팬심은 그저 그런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런 정도의 팬이였던 나인지라 차츰 사업도 바빠지고 또 후에는 일본유학으로 고향을 떠나게 되는 등등의 이유로 연변축구에 대한 관심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차츰차츰 식어갔다. 유학시절의 어느날, 치바대학의 조선족 유학생 그룹을 이끌고 모 대학교의 유학생 그룹과 축구시합을 조직하게 되였는데 연변대학 체육학부를 졸업하고 유학오신 한 선배님으로부터 연변팀의 중앙후비수로 맹활약하다가 간염으로 아까운 나이에 퇴역하셨던 김광주씨가 지금 일본에 와있는데 여러번 마쿠하리에서 축구를 같이 했다는 얘기를 듣고 “아참, 그러고보니 오랫동안 연변축구소식을 듣지 못했구나!”라는 새삼스런 느낌이 들었다.

외국생활도 10여년, 그런 생활도 한단락 접어버리고 귀국하여 북경에 자리잡게 되였고, 지금은 부동산개발로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귀밑머리에 서리내린 중년의 아저씨, 별다른 격정도 감동도 쉽게 맛볼수 없는 랭철한 직업경리인 나이다. 고종훈씨의 큰 아들 고준익씨가 일본프로축구로 이적했다는 등의 뉴스도 별다른 느낌 없이 담담하게 듣게 되였고…그러던 중에 어느날 위챗뉴스에서 우연히 프로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연변팀의 뉴스를 읽게 되였다.

순간, ‘연변축구는 죽지 않고 억세게 살아 숨쉬고 있었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뭔지 모를 묘한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와 한동안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사실 이젠 고향의 부모님들도 다 타계하시고 고향으로 갈일도 별로 없고하니 고향이란 존재 자체도 점점 저 멀리 안개속으로 멀어져가는것이 안타까워 때때로 알알한 아픈 마음을 적실때도 적지 않았었다. 멀어져가고있는 윤토와 고향을 바라보고 계시던 로신 선생의 그런 착잡하고 저린 마음의 느낌같다고나 할가. 그렇게 나에게서 멀어져가던 연변 축구가 장장 15년을 하루같이 끈질기게 갈고 또 닦아 50여년만의 전국갑급련맹의 우승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하다니! 내 고향 연변, 그리고 연변축구는 너무나도 장할시고!!!

그렇다면 연변축구는 과연 나에게 어떠한 존재로 자리매김될것인가? 다시 한번 조용히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사실 축구가 있기전에 내 고향 연변이란 존재가 먼저 있었고, 그래서 연변축구가 더욱더 소중한건지도 모른다. 아마추어 선수들로 회사 축구팀을 만들어 매주 한번씩 활동을 조직하면서, 연변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고 조선족이 도대체 한국사람이냐 조선사람이냐 유치한 질문에 답답하다 못해 버럭 성을 낸적도 한두번 아니였는데 이젠 그런 불편한 점도 없어졌다.

“너 연변축구 모르냐? 중국유일의 소수민족 프로축구팀이 활약하고 있는 곳이 바로 연변이라구!!”, “13억 인구의 중국 프로리그에서 200만 인구의 연변팀이 갑급련맹 우승했단 말야!!!”라고 시뚝거리면, 회사동료들의 “우와~!”하는 감탄소리에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입이 귀에 걸리는 그 느낌 또한 참 좋다.

사실 연변은 조선족자치주라하지만 조선족 인구비율이 40%에도 못미치는 것이 현상황이고, 별다른 제조업이나 기둥산업도 없이 소비형의 산업경제로 변강도시 발전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너도나도 국내대도시로, 해외로 떠나다 보니 연변의 조선족 인구 유실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고, 이대로 나가다가는 연변조선족자치주도 유명무실해져 소실의 가능성도 우스개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현주소에서 무엇을 연변의 “얼”로 만들어 참신한 이미지를 대외에 비쳐주고, 또 우리의 겨레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그런 “자석”같은 인력(引力)을 만들가?

연변의 한족팬들이 경기장에서 아리랑을 열창하면서 고향 축구건아들의 건투를 빌고있다던 뉴스를 접하고 연변축구는 우리 조선족만의 축구가 아닌 전 연변, 나아가서 전 길림성 사람들의 축구로 자리매김 하리라는것은 의심할바 없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연변축구를 문화체육산업의 핵(核)으로 건설하여 연변의 브랜드로 만든다면 연변축구도 “신상태(新常态)”로 연변에 뿌리내려 연변을 찾아오는 이들마다 연변축구관람을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될것이고, 그때가 되면 연변의 부상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전망해본다.

프로축구는 대량의 자금과 전업인재가 수요되는 현대 복무산업의 일종이다. 어느 조선족 대부호가 거금을 들이밀고 연변축구를 키운다는것은 상상하기도 어렵고 또 이미 투자자가 정해진 상황이니만큼, 연변축구의 발전을 위하여 연변축구구락부의 운영에 “크라우드펀딩”모식을 도입한다면 어떨가 과감히 제안해 본다. 크라우드펀딩(영문:crowd funding, crowd financing,equity crowdfunding,hyper funding)이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소규모 후원이나 투자 등의 목적으로 인터넷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다수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로 자선활동, 이벤트 개최, 상품개발 등 목적으로 이용되며 또 그 투자방식과목적에 따라 지분투자, 대출, 보상, 후원 등으로 분류된다.

“수박할머니”가 피땀에 절은 돈 천여원을 들고 손주같이 귀여운 선수들에게 무더운 날 수박이라도 사먹으라고 구락부를 찾아왔었다는, 참으로 목이 꺽 메이는 감동적인 사연을 듣고나니 그런 소중한 돈을 받고 구락부에서 가치에 해당하는 주식을 드린다면 어떨가 생각해보았다.

고향에 외로이 남아계시는 부모님들께는 어떻게 효도할가, 어느 공원다리 밑에서 마장치기나 화투치기로 외로운 나날을 보내게 하기 보다는 연변축구구락부의 주식을 선물하고 주말마다 즐거운 축구관람을 안배해 드린다면 그 이상 효도가 또 어디 있을가. 타향의 자식들도 고향의 부모님들과 공동언어도 하나 더 생기고 하여 전화문안도 무척 다채로울텐데.

해내외에 떠도는 우리 동포들도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여 구락부의 경영에 참여하는 이익공동체를 만든다면 또 어떨가, 몇백만 몇천만을 투자하라고 한다면 좀 무리가 있겠지만 너도나도 몇백원 혹은 천원돈을 내밀고 지분투자, 대출, 보상, 후원 등등 다양한 형식으로 연변축구에 참여하라 한다면 우리같은 월급쟁이들도 큰 부담없이 가담할수 있지 않을가?

최은택 교수님을 이어 이번에는 박태하 감독님, 그리고 하태균씨 등을 비롯하여 한국은 선진기술과 경험, 인력 등을 연변축구에 아낌없이 기여해왔다. 또 오늘날의 이런 성공은 한국의 kbs뉴스에서도 큰 편폭으로 다룰 정도로 한국도 들끓게 하였으니, 연변축구팀의 팬그룹에, 그리고 “크라우드펀딩”에 한국국민들도 이끌어 들여 우리의 한민족의 함께 하는 잔치마당으로 만들수는 없을가?!

연변축구라는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어, 고향사람 타향사람의 구별이 없이 다 함께 모여앉아 연변프로축구 경기를 응원하면서 함께 웃고 울기도 하고, 국내에서 우리 연변축구팀의 프로축구경기가 펼쳐지는 도시마다 우리 겨레조선족들이 뭉쳐가서 고향의 축구팀을 응원해주고, 그런와중에 또 그 도시의 겨레들도 아날로그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돕는다면, 실로생각만으로도 뿌듯한 일이다.

평민축구팀으로서 당당하게 슈퍼리그로 강진압하는 연변팀을 두고 얼마나 견지하냐 두고 보자고 코를 흥흥거리는 소위 축구계의 “전문가”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지만 상관할것없다!! 평민은 평민 나름대로의 평민축구팀을 이끌어 간다!!!

“크라우드펀딩”이란 멋들어진 “개미떼전술”로 특색있는 구락부 운영모식을 창설하여 프로축구의 시장화에 대응한다면 어떨가? 전세기 홍콩 금융위기에 한국도 말려들어 국가경제의 생사존망에 처했을 때, 전 국민이 하나같이 일어나 집집의 귀금속들을 국가에 헌신하는 국민운동을 벌였다면, 우리 조선족들도 연변축구를 위하여 주변사람이 똘똘 뭉쳐 술한잔, 담배 한곽 줄이여 고향의 축구구락부에 기여할수는 없을가. 이것이 연변에 꼭 연변축구가 있어야 하는 이유이고, 또 그 연변축구를 위해 뭔가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타향에 있는 한 겨레의 마음이다.

글/장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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