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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을 회억하여 (2) - 할아버지편 1. 나의 동년(실화 우리 시아버님이 쓰신글)

  • LV 1 마이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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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22 01:05
一. 할아버지와 함께
전주리씨41세, 의안대군파 19대 리선휘(李璇徽)


1. 나의 동년

나는 지금도 1950년부터 있은 사건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나의 동년을 회억하려 한다. 나는 여러번 어머니와 숙부,숙모들과 옛이야기를 나눌 때 나의 기억을 말하곤 했는데 모두들 나의 또렷한 기억에 대하여 놀라고 탄복해했다.       

나는 1946 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번동에 지은 새 집에서 태여 났다. 나의 행복한 동년을 쓰려면 먼저 할아버지 아버지의 걸작인 지신향의 일류의 집부터 먼저 쓰게 된다.

봉금령이 취소되자 수천수만이 조선 사람들이 연변으로 들어오며 각지에 많은 조선사람 마을이 생겨났다. 청정부는 연길 룡정으로 가는 이민들이 길목인 지금 룡정시 지신에 관리기구 화룡욕(和龙峪) 통상국을 세웠는데 내가 세상 알고 학교에 다닐 때까지 화룡욕 아문 토성이 있었다. 그후 58년 대약진 시기에 토담을 허물어 퇴비를 하면서 없어졌다. 이전에 어른들은 이곳을 和龍 아문(衙門)이라 불렀다. 이리하며 아문城 남쪽은 城南이라 하고 동쪽은 城東이라 하였으며 서쪽고래는 새풀이 많다하여 샛골이라 하였다. 성남으로 가는 첫마을은 마통새 지팡(地方)이라 하고 좀 더 올라가면 회령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라 회령촌이라 하였고 또 남으로 올라가 오른쪽 고래는 樊씨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樊洞이라 하였고 중간고래는 張豊이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張豊洞이라 하였는데 해방 후에 오래오래 풍년이 들라고 동음 글자로 바꾸어 長豊洞이라 하였고 왼쪽 고래는 오봉산아래에 있다고 五峰洞(노루막이라고도 함)이라 하였다. 서러골에 가는길과 오봉동에 가는 길어 귀에는 성이 董가라는 지주가 토성을 쌓고 살다가 해방전에 이사갔다. 지금 부르는 제일촌은 이전에 마통새(漢朝통역을 한다고 통새라 했다) 지팡(地 方 )이라 하였는데 마씨는 이 마을 지주로 높이가3- 4m되는 높은 토성을 쌓고 살았다. 해방후 그들은 청산을 맞고 살다가 심양에 이사가고 지금은 토성도 다 무너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해방후 이 마을은 성남에 올라가는 첫 마을이라 제일 촌이라 불렀다. 

할아버지는 장풍동 초창기 개척자의 한분이시다. 1913년 할아버지가 이곳에 이사 올 때만 하여도 장풍동은 3-4호가 사는 인구가 적고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한 未開發 地區였으나 지주 張豊의 地畔였다. 할아버지는 큰 고모를 데리고 한 살된 아버지를 업고 조선 함경북도 회령군 벽성면에서 보리쌀 한말과 쪽바가지 하나를  허리춤에 차고 빈주먹으로 서러골령 70리 고개를 넘어 장풍동에 왔다.

당시 장풍동에는 지주 장씨 외에 조선 이민 3-4호가 금방 와서 개발하며 거주 하였다. 그중에는 유동촌과 장풍동 아래 마을에 노할아버지와 그의 큰 아들과 셋째 아들도 있었다. 30년대에 유동촌에 집들은 일본놈 토벌대가 항일 지사들이 활동 장소라 불태워 버렸다.

당시 노 할아버지는 한해 먼저 장풍동 아래 마을에 와 자리를 잡고 이듬해에 할아버지를 데려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지금 장풍동 웃 마을에 아름드리 고목을 베여 내고 그 자리에서 베여낸 재목으로 8간 집을 짓고 계속하여 주위의 고목을 채벌하며 토지를 개간하였다. 피득(언뜻) 생각하면 이 주인없는 땅은 개척만하면 다 내 땅인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성남에만 하여도 지주 넷이 있었는데 그들은 馬氏 樊氏 張氏 董氏다. 이곳의 매 한 치의 땅을 개척하면 모두 지주에게 엄청난 대가를 치려야 하였다. 이 지주들은 모두 외지에서 온 한족들로 관가에 뢰물을 먹이고 땅을 차지하고 이민들이 피와 땀으로 지주가 된 자들로 목적만 달성하면 모두 급급히 이 곳을 떠나버려 어머니가 35년에 장풍동으로 시집왔을 때는 그들은 이미 떠나간 뒤로 그후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이었다. 당시 도끼와 톱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름드리 고목을 베여 내고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하던 그 로고가 어떠했겠는지는 지금 그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해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장풍동 윗마을 서쪽 구벅이(구벅은 구석의 함경도방언)에 팔간집을 짓고 그 집에서 근 사십년간 사셨는데 동네사람들은 그 집을 구벅이집이라 하였다. 그후 둘째 삼촌과 세째 삼촌까지 결혼하고 1945년 8.15광복에 외지에서 일하다가 돌아와보니 집 식구는 16명이나 되여있었다 한다. 그리하여 할아버지는 번동아래에 집터를 잡고 밭을 사들이고 지신구에서 제일로 자랑하는 열간 집을 지었다.

이 집은 할아버지의 자존의 걸작이었다. 직경이 50cm넘는 대들보로 받쳐진 웅장한 열간 큰 집에 남들의 살림집 못지 않는 사랑채가 있었고 앞뒤에 넓은 터전, 뒤에는 과일나무, 안밖을 백토로 칠한 새하얀 전통적 조선식 건물, 지붕은  조이짚을 량쪽을 짤라서 예였는데 특히 조이짚은 잘 썩지 않는 특점이 있어 만년 먹기라고 한다.

1954년 우리가 이사 간후 우리 집을 사다가 새로 지은 집에서는 55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이 그 짚 이영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당시 집들은 웃 방만 천정을 눌렀는데 우리 집은 웃방과 정주간 모두 천정을 누르고 정주간에 일본 군사용 밀페식 고급 펌프를 안장하였으며 직경이 1m넘는 무쇠 물독 그리고 펌프주위와 가마 후런은 콩크리트로 하였다. 그 때만 하여도 콩크리트는 매우 귀하였다. 이런 집은 40년 대가 아니라 5-60년대에도 보기 드물었다.

집에는 소, 수레, 벼 탈곡기, 군재, 가대기등 농기와 방아간에는 멎진 방아, 사랑채에는 베틀과 커다란 뒤주와 풍기가 있었다. 風機는 당시 일반적으로 쌀을 찧을 때 사용했는데 할아버지는 탈곡시에 사용 하였다. 집안에는 재봉기, 축음기, 매돌, 직경이 70cm가 넘는 피나무로 가공한 보기 좋은 가벼운 매판, 직경이 50cm넘는 참나무로 가공하여 만든 떡구시, 그리고 각종 크기의 함지 책상과 크고 작은 밥상, 특히 매판과 함지는 모두 피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직경이 1m넘는 나무를 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며 몇 십년을 사용하여도 트고 갈라지지 않았으니 그 건조 가공 기술도 대단하였다. 그리고 떡구시를 만든 자작나무도 직경이 50cm 넘는데 그렇게 땅땅하고 비틀게 꼬여 자란 곧은 나무를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창문과 간문은 아주 정교하고 단단하고 맵시 좋았는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목수기술이 아주 좋아 벼탈곡기 제외한 이 모든 것들을 전부 손수 만드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자기의 두손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후대들을 위하여 살기 좋은 리상촌을 건설하였다.

나는 할아버지 전성기에 태여 났기에 나의 동년은 아주 행복하였다. 우리 집에는 오가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다. 나의 친구들도 많이 왔는데 옥인이 옥봉이는 경상적으로(자주) 오고 때로는 고모사촌 춘호 장풍동에 10촌동생 옥련이도 놀러 왔다. 우리는 세감질(소꿉놀이)을 놀거나 숨박꼭질 아니면 강변 모래톱에서 혹은 뒷가 산에서 뛰놀았는데 뒷산은 돌이 많아 개간하지 못하여 초목이 자란 그다지 크지 않은 산으로 우리가 놀기에 맞춤했다.

봄이면 노란나리. 백합, 도라지꽃, 함박꽃과 이름 모를 꽃들이 많이 피였다. 그리고 고사리, 삽찌, 닥시싹, 고추나물, 우정금등 산나물도 있었다. 그 산 아래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심어 놓은 배나무, 사과배나무, 돌배나무, 질구배나무, 오얏나,무 살구나무들이 있었다. 우리 집 과일 나무는 봄에 별로 꽃들이 많이 피지 않았는데 둘째 숙부네집 과일 나무가 꽃이 필 때면 마치 집이 꽃밭에 뭍혀 있는 듯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꽃이 적게 핀 원인은 과일나무를 옮긴지 얼마 안되고 땅이 너무 슾한 원인에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한번 뒷가 산에 놀려갔다 오면 땅이 너무 질어 발이 빠질 정도였으니. 어쩌다가 형님들과 같이 뒷가 산에 가면 형님들이 싸리가지를 꺽어 백합뿌리를 캐여 왔는데 어머니가 삶아 주었다. 감자같은 맛에 달콤한 맛이 더 해져 정말 맛 좋았다. 그러나 돌밭이여서 한 뿌리 캐기에도 여간 힘들지 않았다.

강변 모래톱에는 할아버지가 파놓은 일 년 내내 얼지 않는 샘물이 있었으며 봄이면 할미꽃, 민들레꽃, 장미꽃외에도 이름 모를 각종 꽃들이 만발한다. 여름이면 강가의 푸른 잔디 또한 좋았다. 가을이 되면 샘물터에서 물고기를 한 소래씩 잡아다 철엽을 했다. 집에서는 셋째 삼촌이 사온 축음기도 띠우며 놀았는데 축음기판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 인상 깊은 곡은 왕서방 련서와 농부가다. 이것이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오매에도 그리던 리상촌의 평화롭고 오붓한 일가일 것이다.

나는 이때를 회억 할때면 이 노래가 생각 난다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동산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굿 불굿 꽃대궐 차리인동네
그곳에서 살던때가 그립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분이시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총명과 지혜 근면과 의지로서 빈손으로 장풍동에 와 근40년간 고전 분투하여 우리에게 공부할 기반을 닦아 주었다. 할아버지는 밭이야 말로 인생사의 근본임을 잘 알고 있었으며 토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억척같이 황무지를 개간하시였고 돈만 생기면 밭을 사들이었고 아무리 흉년이 라도 밭 한 뙈기는 사야 한다는 철칙을 가슴에 품고 있은 분이다.

벼슬길에는 자식들에게 희망을 두지 않고 다만 그 다음 항렬 즉 镛자 항렬 에서 인재가 나오리라는 족보의 명시를 굳게 믿었으며 손자들을 공부시켜 부귀와 공명을 이루려 했다. 할아버지는 공부 잘하는 손자들을 보면서 자신의 所願인 ‘進士’길이 눈앞에 보이시는 듯 자신이 벼슬한 것보다 더 기뻐하시며 손자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토지 개혁 이후 에도 더 많은 밭을 사들이었다. 이는 좀 잘못된 선택이였으나 집체 생산전까지 가정수입의 주요 원천이었다. 만약 할아버지의 근40여년이 피타는 고전분투가 없었다면 우리의 오늘은 암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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