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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체험수기

제8기치바옥타 차세대무역스쿨 참가후기 제4편 - 7/19 첫날 오후 두번째강의

  • LV 1 도라지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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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1 16:38
제8기치바옥타 차세대무역스쿨 참가후기 제4편 - 7/19 첫날 오후 두번째강의

이틀동안 진행된 치바옥타무역스쿨은 어제 끝이 났지만, 저의 작업은 아직 진행중입니다. 짧은 이틀동안 너무나 빡센 스케쥴이라서 배운것도 많겠지만, 그것을 소화시키는데도 엄청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도 중요한 내용이 많아 새로운 것을 배울때마다 그전에 배운것을 인차 잊어버리기 쉽겠지만, 이렇게 글이라도나마 남겨 나중에 다시 돌아보는데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전에 인차 메모장에 기록했던 강의내용을 회고하면서 아직 기억이 따끈따끈 살아있을 때 글로 남겨놓도록 하겠습니다.

7월19일 오후 두번째 강의는 원래 S&T Motive 대표이사 김택권회장님의 발표가 예정되었었지만, 갑작스런 회사의 일로 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점심에 긴급회의를 열고 토론결과 허영수회장님의 발표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허영수 회장님은 지난 4월19일 치바옥타 창업과 기업경영경험담에서 한번 발표한적이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한번 먹고 나면 두번 다시 먹고 싶어지고, 착한 여자는 한번 데이트하고 나면 또 다시 데이트하고 싶어지듯이, 재미있는 인생과 성장의 이야기는 두번 들어 첨에 느끼지 못했던 깊은 맛을 새롭게 느껴보는것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4월19일 내용은 "노미까이 신비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쉼터의 일본수기에도 올렸고, 현재 치바옥타 Facebook에도 올렸기 때문에 필요하신분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두번의 발표에서 겹쳐진 내용이 있다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메세지겠죠. ^^ 비록 이전에 한번 올렸었지만, 이번에는 장소가 틀리고 시간도 다르고 또 듣는 사람도 다르기 때문에, 전번의 것과 다른 맛이 될거라는 생각에 또한번 적어봅니다.

아래는 허영수회장님의 발표내용(갑작스레 조절한 것이기에 사전에 나누어준 책에는 관련 내용이 없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몽땅 제가 듣고 기록한 것이지만, 가장 뒷줄에 앉았기에 말소리가 잘 듣기지 않거나 앞에 앉은 미녀를 보느라고 곁눈 팔다가 못 알아들은 내용도 있을 수 있으므로, 기록에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아시고 참고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을 적은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점심에 갑작스레 연락을 받고, 이렇게 이 자리에 서서 여러분과 저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컴퓨터를 들고 왔기에 그안에 있는 저의 경력을 여러분에게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전개해가겠습니다.

6년전에 치바옥타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일본에 온지는 24년이 되었습니다.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편하기에 일본어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대부분 상황과 같이 저도 자비유학으로 일본에 왔습니다. 그때 연대에서 선생을 맡고 있었는데 월급이 그때당시 돈으로 86원이었습니다. 그것을 저금해서 일년만에 980원정도 모아졌고, 그동안 저축한 돈을 딸러로 바꾼게 130딸러였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91년도 3월 일본유학을 온 것입니다.

금방와서 첫 3개월은 사발도 싯고, 또 여러분이 경험한것과 같이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학업이 끝나고 원래는 연대에 돌아가 선생이 되어야 하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좀 아쉬움이 있다는 생각과, 그때의 가지고 있는 돈으로 돌아갈 비행기표를 살 돈이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기에 좀 더 있을 생각으로 설계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도 1월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월에 건축설계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때 어떤 타이밍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어떤회사를 설립해야 할가 고민하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빠져버리 지금 이모양이 되었습니다. (폭소)  그때 38살이었고, 년수입이 약 600만엔 정도 되었는데, 만약 그때 그런 결단이 없었더라면 지금은 다른 인생이었겠죠.

남자들은 35살이 되면 자연히 焦る(발안, 조급함)하게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가, 가정은 어떻게 먹여살려야 할가 등으로 말이죠.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줄곧 건축설계 였으니깐 다른건 할 줄 모르니깐 본업을 떠나면 안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일본의 건축설계는 엄청 엄격합니다. 한평생에 한채나 지을수 있을가 말가 하는 큰 투자이기때문에, 사람들은 자기집의 설계에 대해서 엄청 신경을 쓰게 되는데, 누가 그런걸 연변사람한데 믿고 맡길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또 만약 건축설계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자기의 전업을 벗어난다면 할 수 있는게 또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고민끝에 역시 건축설계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습한 전업은 꼭 그기에 어울리는 산업이 있습니다. 첨에는 그 핵심에 명중하지 못하더라도, 우선 변두리로부터라도 접근하다보면 점차 중심으로 갈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치바옥타같은 조직도 없었고, 어느 누가 창업에 관해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저는 창업전 3년간 회사직원으로 일하면서 주말에는 여러사람을 만나 네트웍을 구축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이어가다가, 겨우 사직하고 창업을 하게 된것입니다. 물론 첨에는 아무것도 몰라, 회사설립에 관한 책들을 일고 한개월 학습하여 어렵게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이 아주 보귀한 것이었습니다.

전업이 없어 안된다고 생각하더라도, 제일 말단부터 하면 점점 커질수 있습니다. 2000년도에 회사 설립해서 15년만에 지금은 동경본사에 40몇명 그중 일본인 건축사 32명, 중국인 건축사 8명을 두는 회사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호텔도 경영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때 싱가폴의 투자회사가 일본에 진출하고 싶어했는데 적절한 파트너가 없었습니다. 그때 일본에 1급 설계사가 된 중국사람은 있어도 1급 건축사들이 있는 설계소를 운영하는 중국인은 드물었던 것입니다. 싱가폴 투자회사가 100억 들고와서 투자하고 싶은데 누구를 찾겠습니까? 그래서 저랑 합작하게 되었고, 자본금 3억 8천만에 호텔을 구입하고 모든 사원을 재고용 하여 운영하게 된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일본의 회사만 가지고 있으면 일본사람과 다른점이 없습니다. 언어와 문화 이런것이 우리로 하여금 일본의 본토 회사들과 다른 가치를 부여합니다.

겸손하게 학생이 되는 자세로서, 일본에서는 일본기업들이 우리들의 선생이 되지만, 또한 중국시장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들의 중국어선생이 되는 그런 우세를 발휘한 것입니다. 그래서 북경에 설계회사도 설립하고 후에 길림성에도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중국은 국가기업이 민간기업으로 전변하는 중이었는데, 연변의 설계소도 그런 변화에 처해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가 アピール했습니다. 우리가 그 설계소를 구입하면 어떨가 라고 말이죠. 일본에도 설계소가 있고 하기 때문에 우세는 아주 컸고, 그래서 주식 60%를 구입하여 사원이 40명~50명 증가했습니다. 지금은 매달 총 월급지출만 해도 5,000만엔이 넘는 상황으로 성장했습니다.

6년전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전쟁시기 중국에 설치된 화학무기를 페지하기 위해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고 설비들을 제조하는 프로잭트가 시작되었다는 공고가 뉴스에 실린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기의 기본조건을 보니깐, 일본에서 1급 설계사가 몇명 있어야 하고, 중국에도 설계사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신문을 읽고 나니 이건 완전히 우리 회사를 위해 준비한 프로잭트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보니깐 아래에 또 자세한 조건이 첨부되어 있는데, 3년간 연속 세금을 낸 회사여야 하고, 국가의 건축설계 프로잭트를 가지고 있는 회사여야 한다는 조건이 더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줄곳 세금을 열심히 내왔고, 심지어 돈이 없으면 자신의 월급을 깎아서라도 세금을 내기에 노력했기에 이건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단 한가지 조건에 걸리는게 있었다면 바로 자격등급이 A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때 우리의 자격등급은 D였습니다. 그런데 보니깐 공지를 몇주간 내었는데도 아무도 응모하는 회사가 없었던지, 요구하는 자격등급이 C로 되어 있었던 겁니다. 비록 아직 조금 차이는 나지만 제출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깐 자그마한 글로 조건이 더 붙어있었는데 그것인즉 시공현장이 중국의 동북이기때문에 추운곳의 건축경험이 없으면 안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연히 우리 설계소는 연길에 있으니깐 이건 전혀 문제가 안되었죠. 입찰결과 4개월 기다렸는데 응모 자격을 가진 다른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은 프로잭트를 취득하게 된 것입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다른 회사가 없이 우리 회사만 그런 특별한 조건에 부합되었던 것입니다. 그럴줄 알았더라면 좀 더 높은 값을 불렀을건데... (폭소)

창업하기에 앞서 나는 무엇이 가능한가를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하면 우리는 3개국의 문화에도 익숙하고 언어도 통합니다. 회사를 꾸리려면 3년동안 진지하게 고민해서 회사를 만들어보세요.

경영에 있어서 사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가를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늘구어야 할지, 사람을 늘구면 일은 어디서 따올지는 모든 창업자 초창기의 고민입니다. 운이 좋게 저는 원래 있었던 회사가 없어져서 그때 같이 일했던 동료 세명이 와서 동참해주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지금도 우리 회사에 있으며 이미 전무, 사업부장 등 직위를 맡고 있습니다.

저는 사원들과 자신의 꿈 비젼을 나눕니다. 목적을 확실하게 가지고 함께 나갑니다.

월급은 같은 동급들보다 1만엔이라도 더 받을 수 있게 배려를 해 줍니다. 조금이라도 좋은대우로서 어디에 나가더라도 당당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죠.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러듯이 사원들도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근심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회사가 망하면 어떨가, 퇴직한후 생활은 어떨가 등. 그래서 회사에서는 사원들에게 사회보험을 가입해줍니다.  정년퇴직하면 1,500만엔을 받을 수 있게, 혹은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회사가 망하더라도 보험으로부터 몇백만의 퇴직금이 나올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야 마음을 안착시키고 같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세금을 제출하는 것은 엄청 중요합니다. 다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세금만은 꼭 제대로 내야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월급에서 깍더라도 세금을 내야 합니다.

시간이 거의 됬지만 하나만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회사의 성장에 있어서 Network는 아주 중요합니다. 예하면 저희 같은 경우는 몇개의 도시계획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과 연합하여 네트웍(일종의 연합회, 협회)을 구축했습니다. 그 결과 어떠한 큰 프로잭트가 와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같이 대응해줄 회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하면 자기 회사만이 노력할 경우 회사직원이 100명이라면, 딱 100명에 맞는 프로잭트가 오면 좋겠지만, 만약 100명 이상이 필요한 프로잭트가 오면 대응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옆에 Network이 있기 때문에 어떤 큰 프로잭트가 와도 다 소화시킬수 있고 당당해집니다.

또한 몇백명의 설계사를 둔 회사는 보통의 경우 몇십명의 설계사를 지닌 회사를 만나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Network이 있기 때문에 그들도 우리를 주목하게 됩니다.

Network를 구축함에 있어서 봉사활동이 엄청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OKTA의 경우, 네트웍이 전 세계 주요도시에 분포되어 있어, 어디어디 어떤 용건으로 들리는데 그 용건에 적합한 사람 찾아주세요 라고 전화 한통하고 떠나면, 그 지역에 비행기에서 내리는 시각부터 아주 연결이 잘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OKTA Network의 素晴らしい所です。

시간관계료 여기서 마치고 질문을 받겠습니다.

질문1: (질문한 분의 성함은 모르겠지만, 이제 회사 갓 설립한지 2년되는 분임) 강의 잘 들었습니다. (폭소. 폭소의 원인 잘 모르겠음. 아마 "강의"라는 표현을 써서일가? ㅋㅋㅋ)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것은, 15년전 회사 창립시와 지금 성장후의 시기 어느때가 더 힘듭니까? 혹시 저녁에 술 안마시면 잠이 들지 않는 때가 있습니까?

답: 15년전에는 불안함이 더 컸습니다. 래일은 어떻게 살아갈가 , 모래는 어떻게 살아갈가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때는 한달에 7만이나 8만엔정도면 먹고 살아갈 수 있으니깐 큰 압력은 없었습니다. 지금의 다른 점은, 매달 대량의 자금이 나가고 들어오기 때문에 최소한 3개월의 월급정도의 금액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압력이 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컴퓨터 들고 와서 한쪽으로 참가하면서 한쪽으로 각 지사들의 売り上げ 를 채크합니다. 아까 보여주었던 경력서도 마침 제가 컴퓨터를 들고 왔기에 이렇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밖에서 술 마시는 일이 너무 많기에 집에서는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술이 건강에 좋지 않기에 집에서는 될수록 마시지 않는게 좋습니다.

질문2 (변소화) :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 15년전 작은돈이 지금은 큰 돈으로 되지 않았습니까.  작은돈이 큰 돈으로 넘어갈 때 그것을 어떻게 관리했으며, 어떻게 사람을 믿고 그걸 맡겼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 지금의 경우는 매년 나가는 돈이 4억이나 5억이 되기 때문에, 몇년전부터는 50만엔 이상 필요한 금액은 나에게 보고하되 작은 돈은 일일이 보고하지 말라고 정했습니다. 예하면 호텔에서 오늘 되지고기로 할거냐 소고기로 할거냐 같은 결정은 너네가 알아서 해라고 맡겼구요.

간부는 제가 직접 사람을 만나서 채용합니다. 그리고 직원은 간부가 판단해서 채용하구요. 룰로 정해진 것  이외의 상황은 저에게 보고하도록 합니다. 또 아주 중요한 것은 재무보고는 확실하게 저에게 보내오게 합니다.

여기서 하나 더 추가하겠습니다. 기업은 하나만 운영하게 되면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같은 경우는 회사가 여러개 있어 한달주기(周期)로 돈이 들어오는 컴퓨터 그래픽회사가 있고, 3개월에 돈이 들어오는 회사가 있으며, 또 건축설계 같은 큰 프로잭트는 1년에 한번씩 큰 돈이 들어오는 회사도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큰 돈 하나만 바라보게 되면 위험하게 되지만, 매달, 그리고 3개월만에 들어오는 돈이 있기에, 매달의 지출에 필요한 유동자금을 보장할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 한가지 채용광고를 하겠습니다.(폭소) 지금 우리 회사에 사람손이 모라자 호텔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한데, 혹시 주변에 그러한 인재가 있거나 하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창업이나 기업운영에 상담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강사들은 만나기 어렵지만, 저는 항상 치바옥타에 있으니깐요. 앞으로도 자주 만날겁니다. (박수)

강의 끝.

이로서 7월19일 토요일 첫째날의 모든 4강좌의 내용을 다 올렸습니다. 19일 오후 3시부터는 각팀의 팀장을 뽑고, 프레젠테이션 주제를 정하고, 저녁에는 노미까이등이 있었지만, 이 내용들은 제일 마지막에 정리하도록 하고, 아직 기억이 생생할 때에 우선 7월 20일 있었던 나머지 두 강좌의 내용을 정리해서 올려볼가 합니다.

그래서 다음편은 7월20일 이튿날 오전에 있는 강좌의 내용으로 나갑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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