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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체험수기

이제 20년후 조선족과 한국인의 위치가 뒤바뀐다.

3국어에 능하고 4국어에로 발전하는 세대에...
조선족들의 재팬드림이 서서히 무르익어가고있다.
지구상에서 설자리가 넓어져가고 더불어 조선족 브랜드가치가 높아지고있다.
내친구 김씨~일본 동경대학 박사학위...일본 모 대기업에서 4년간 근무해있다가 2009년도 8월에 길림대학의 요청으로 박사연구생교수로~
친구 누이와 매부도 일본 동경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다가 2004년에 미국으로 이주...
얼마전에 광동성 汕头大学와 상해교통대학의 요청을 받고 귀국을 고려하는중...
본인들은 부모들이 계시는 연길부근으로 오고싶지만 동북에 상응한 대우를 받는 대학교가 없어서 망서린다고한다.
그렇다고 미국 국적을 버리긴 아까운 편이라...

북경대학 외국인 유학생중 한국인 학생이 60%차지한다고하는데 석사 졸업장을 타갖고 나가는 학생은 절반도 안된다고한다.
한국인 자제들이 미국유학도 태반은 돈을 허비하고 4~5년후 빈손으로 귀국하는 학생이 많다고한다.

미국인 영어교사에게 영어 가르치는 하광호 뉴욕주립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유엔에서 각국 대사들이 나와 토론하는 장면이 TV에 나왔다. 비영어권 대사, 특히 한국과 일본·중국·북한 대사의 연설을 유심히 봤다. 놀랍게도 일본 대사가 영어를 가장 잘하더라. 그 다음이 중국·북한 순이었다. 김정일도 영어교육은 제대로 시키는 모양이다. 한국 대사가 제일 못했다. 발음도 표현도 수준에 못 미쳤다.”

한국의 영어교육을 평가한다면.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옛날과 달리 호텔에 오면 영어도 어렵지 않게 통한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영어교육은 중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첫째 원흉은 고득점 획득에 치중하는 영어시험이다. 아마 지구상에서 영어에 가장 많은 돈과 열정을 쏟고, 출판을 하는 나라가 한국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 미미하다. 당장 호텔이나 관광지 또는 거리에 적혀 있는 영어 안내문에 엉터리가 너무 많다. 조만간 서울거리의 엉터리 영어표현을 모아 책을 하나 낼 생각이다. ‘이만하면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것도 문제다.”

조선족들이 성공할수있는 믿거름은 다만 3개국어나 4개국어를 정통한다해서 한국인과의 위치를 바꿔놓는다는건 아니다.
중국식 유교사상이 조선족들 몸에 배여있고 한국식의 정열적인 혈통을 모두 갖고있기에 언제나 일을 처리함에있어서 실수가없다.
차분하고 내성적이고 완벽한 결과가 나오기전에는 내색을 내지않는다.
냉정한 사고방식이 오히려 조선족들의 둘도없는 장점으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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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 1 GOMMY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있어서 퍼와서 댓글로 올려요..마카오카지노님 그냥 한눈감아줘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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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철(33)
중국 베이징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임씨의 부모는 1993년부터 한국을 오가며 자식을 뒷바라지 했다. 부모는 중국 최고 명문대를 졸업한 아들이 중국에서 취업하기를 바랐지만, 임씨는 일본 유학을 택했다. 와세다대학에서 중국 정치 전공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홋카이도대학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일했고, 2009년 여름부터 1년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교환연구원으로 있었다.

조선족학교에서 한중일 3개국어를 배웠다는 것은 큰 강점이지만,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어지간한 노력 없이는 3개 국어 모두 본토사람만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씨는 베이징대에 입학해 난생 처음으로 조선족이 아닌 중국인 학생들과 경쟁했다. 자신의 중국어가 부족함을 느꼈다. 읽기와 쓰기가 특히 힘에 부쳤다. 일본 유학을 시작할 때에는 일본어가 문제였다.

조선족이 한국어·중국어·일본어를 주로 구사하는 것은 또다른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게 임씨의 생각이다. “영어를 배우지 않기 때문에 조선족들의 시야가 동아시아에 갇히는 경향이 있어요. 젊은 조선족들이 보다 넓은 세계에 눈을 떠야죠.” 임씨는 적당한 자리를 구하면 어느 나라든 가서 일할 생각이다. 아직은 중국 대학교수 임금이 너무 낮고 자유로운 학문연구에도 제약이 있어 망설여지지만, 나중에는 중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그는 내년 3월 일본에서 만난 중국인 여성과 결혼할 계획이다. 결혼식은 부모가 있는 서울에서 치를 예정이다.

■ 최영국(33)
고중(고등학교)시절 공부를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이 베이징 등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때 최씨는 고향과 가까운 길림성의 길림화공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일본에서 취업하겠다고 일자리를 알아보는 친구가 있었다. 최씨도 친구따라 강남에 갔다. 함께 일본 기업을 알아봤다. 중국기업보다 한국기업, 한국기업보다 일본기업의 임금이 더 높았다.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한지 석 달 만에 일본 정보통신기업에 취업했다.
2년 동안 일본 기업의 중국 다롄 지사에서 일하고 2003년 일본 도쿄의 본사로 옮겨왔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조선족 여성과 결혼했고, 2009년 딸을 낳았다. 최씨의 아이폰 바탕화면에 딸의 사진이 들어있다. 약 500만엔의 연봉을 알뜰하게 모아, 지난 3월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 있는 3500만엔짜리 만숀을 구입했다. 최씨는 “워낙 없는 집이라 부모님께 손 벌릴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최씨의 부모는 줄곧 고향 서란에서 농사를 짓다 3년 전 한국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두 살 위 형은 한국 대기업 중국법인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 최인원(33)
7살 때 아버지를 골수암으로 잃었다. 어머니는 홀로 최씨 남매를 키웠다. 최씨가 초중(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는 돈을 벌러 한국으로 떠났다. 최씨와 여동생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최씨는 서란조선족제일중학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 했다. 6년 내내 빠지지 않고 반장을 맡았다. 북경교통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국비유학생으로 일본 요코하마국립대학에서 국제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최씨는 계속 박사과정을 밟을지, 베이징의 일본기업에 취업할지 고민했다. 일본 회사의 임원이 최씨의 지도교수에게 중국인 학생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지도교수는 최씨를 추천했다. 2005년 최씨는 일본의 플라스틱 생활용품 제조업체에 취업했다. 회사 매출의 절반이 수출에서 이뤄졌고, 수출의 절반이 중국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본사직원 600명 가운데 중국인은 최씨가 유일하다. 최씨는 입사 5년만에 계장으로 승진했다. 입사동기 중 가장 빠른 승진이었다. 보통 계장이 되기까지 10년이 걸린다.

최씨가 취업을 고민할 때 한국은 후보에도 들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도 한국에서 취업하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일본은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 워낙 많아 조선족에게 열려있다. 한창 발전하고 있는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기회가 많은 나라이다. 한국은 매력이 없다. 최씨는 “우리 부모님들이 한국에서 너무 힘들게 일하고 괄시받아서 가고싶은 생각이 없다. 조선족들이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아서 잠깐씩 방문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최씨는 2009년 일본에서 일하는 조선족 아내를 맞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데려온다. 여동생은 한국 대기업의 베이징 지사에 취업했다. 세 식구는 매년 설과 추석 때 서울에서 모인다.

■ 김홍녀(32)
연변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난징의 한국 대기업에 취업했다 그만두고 일본 히로시마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유학을 마치고 일본의 무역 회사 두세 곳을 옮겨다녔다. 최근 인테리어 자재를 수출하는 무역회사에 취업했다. 회사는 본격적인 중국진출을 앞두고 김씨를 채용했다. 중국시장 개척의 중책이 맡겨졌다.

김씨는 요즘 친구들에게 신랑감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국적은 상관없지만 기왕이면 일본에서 살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 대지진 이후 중국으로 돌아간 조선족 친구들도 많지만, 중국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 서영(28)
중국 심양에서 태어났다. 여덟살 때 부모는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났다. 심양조선족제일중학교를 졸업하고 심양공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과 동기생 60여명 가운데 조선족은 서씨가 유일했다. 성적은 중하위권이었지만 취업은 가장 빨랐다. 중국에 공장을 둔 일본 반도체 회사의 공장장 비서 자리였다.

2007년 10월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 요코하마의 카나가와대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부모는 한국의 공사현장과 식당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1년치 등록금과 생활비 7만위안을 마련해줬다. 부모에게 더이상 손 벌리기 미안해서 틈틈이 돈을 벌었다. 야끼니꾸집, 이자카야, 비디오대여점, 호텔, 훼밀리레스토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은 중국어나 한국어를 일본어로 통역하는 시급 1천엔짜리 전화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다. 지난 여름방학엔 한 달동안 200시간을 통역했다.

서씨는 내년 3월이면 석사학위를 받는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예전엔 조선족 유학생들 대부분 일본에서 취업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하강과 올초 대지진으로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서씨는 “중국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머뭇거리다 뒤쳐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결혼을 생각할 나이도 됐다. 한국인 남편은 싫다. 서씨는 “시댁에서 반대하는 결혼은 하고싶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족 남편도 그닥 내키지 않는다. 서씨 생각에 조선족 남자들은 술마시고 노래하고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기왕이면 자상한 한족 남편을 만나고 싶다. 요즘 중국 여성들 사이에선 ‘상해 남자’가 대세다. ‘상해 남자’는 여자친구의 핸드백도 들어주고 요리도 잘 한단다. 하지만 부모가 한족 사위를 선뜻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서씨의 오빠도 부모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오래 사귄 한족 여자와 헤어졌다. 서씨의 부모와 오빠는 모두 한국에서 살고 있다.


출처'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6181.html#
LV 1 액션오리
조선족들은 언어가 가능해서 직장찾기 쉽다는거 4-5년번부터 실감햇는데, 개인적의견을 말해보면 조선족들은 한족 한국인보다 창업의식이나 리더십이 뒤떨어졋어요.
LV 1 마카오카지노
창업의식이나 리더십이 뒤떨어졌다는 결론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국인이 중국에서 창업하려면 거의다 조건을 같고 "태여"납니다.
대그릅 업체거나 그에 상응한 하층업제로 "창업"하게되죠.또한 한국에서나 외국에서 직접 체험해본 밑천으로 창업하니깐 상대적으로 창업에 쉽게 이루어진다고 할수있습니다.
제가 알고있는 한국인 몇몇은 여러번 "창업"했다가 조상이 물려준 땅까지 팔아 은행대부금을 물고있는 분들을 볼수있습니다.

허나 조선족들은 순 바닥에서부터 일어섰습니다.아마 한국이 50~60년대를 거쳐온 선배들처럼 말이죠.
이젠 제법 자리잡아가고있는 조선족 기업들이 머지않아 우후죽순처럼 일어설것입니다.
조선족기업가들이 중국에서 중국 거물들과 생존을 겨루는건 "어려운 일"이지만 시간이 결과를 증명해줄겁니다.

리더십은 아직 평가하기 이른것같습니다.소위 리더십이란 성공한 자만이 그 리더십을 인정받더군요...ㅎㅎ
LV 1 기린같은사자
한국을 왜 경쟁대상으로했는지 리해않가오...

50년후에 우리들은 한국,중국,북조선하구 다정하게 손잡고
일본을 섬에서 몰아내야한단데...얘네 타이,인도네시아,미국하와이 하구 친한게 그리루 가서 살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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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땜에 지금 우리는 3개국에 나뉘여살구있는데..왜서 원흉은 다 잊어먹구사는가말이...참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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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 없어지믄 북조선문제두 해결된단데....50년후지만
LV 1 마카오카지노
50년후에 어떻게 되겠는지는 우선 모를일이고...
현재 상황봐서는 북조선땅을 중국에 바칠것같은 느낌....내말이 너무 심했나?ㅎㅎㅎ
일본때문에 우리가 3개국에서 나뉘여 살고있다고하는데...남을 탓하기전에 나자신을 탓해야지...
일본 침략을 받은건 우리 선조들이 무능한 정치.세력이 열악했기때문이지...
동네 나가서 얻어터지고 재가 때렸기 때문에 내가 얻어맞았다는 논리는 안맞는다고 보오...
맞지않겠으면 힘을 키워서 상대를 막아내던지 아니면 상대를 들이치던지...

일본 각도에서보면 조선반도를 32년간 식민지로 만들고 중국을 8년간 통치한 역사는 "위대한 역사-업적"으로 남을것이요.
조선민족과 중국인들에게는 치욕의 역사로 남겠지만...

또한 그땐 일본침략 때문에 3개국에 갈라져있다면 지금은 일본과 상관없는데 왜 3개국에 갈라져있으며 왜 남북이 통일하지못하고있는지?...ㅎㅎㅎ
모두 우리 조선민족들이 독점욕,자존심?때문이라고할가?ㅎㅎㅎ

현재 남북 문제는 일본문제두 다소 있을게고 중국이나 미국 문제도 있을것같지만 문제는 남북 당사자들이요.
내인과 외인의 관계라고할가?
6자회담을 아무리 자주한들 일이 성사되는걸 못봤소...
정치인들이 책상머리에서 말공부만 하지...
양자회담을 가지고 통합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닐가?물론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겠지만...ㅎㅎ
LV 1 괴테
여러 언어들을 잘하는 게 조선족의 장점인 건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조선족이 여러 언어들을 할 수 있다는 장점에 너무 안주해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창업과 개척 정신이 약한 것 같슴다...
LV 1 마카오카지노
긍정이가는 글입니다.
창업은 "조건"이 허락되지않는 상황이라고 볼수있지만 개척정신이 부족한건 사실입니다.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쉽게 만족되여가는것이 우리 조선족들의 치명적인 약점이죠...
LV 1 엔지니어
언어능력은 컴퓨터능력과 같이 단지 수단일뿐...

위에 괴테님이 말한것같이 조선족들은 언어장점에만 집착하다나니
기타 능력이 부족한것 같음.

현재,조선족중에 산업기술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기술직인원이 극히 적은것도 상술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문선택에도 구분하기 모호한 계열에만 치우치고 졸업하여서도 그냥 무역업에 종사하거나 취직에서는 회계,관리직 통역이 다수이고
소수의 생산관리직,그리고 기타 서비스업에만 대거 집중되는것 같으니 ...
각종 연구개발등 특종분야 종사자는 극히 드문것이라.
향후는 정치,기계공학,화학,법학등 각종 분야로 넓혀가야만이 균일한 발전이 될것으로 생각됨.
LV 1 마카오카지노
현재 중국 국내에서 활약하고있는 조선족들의 업종을 보면..
1.영업
2.구매
3.통역
4.생산관리직
5.기술직

그중 한국 기업에서 활약하는 조선족이 제일 많고 버금으로 일본 기업입니다.
미국이나 유럽기업에서 활약하고있는 조선족은 극히 적지요.

기외로 악세사리,가방,가발,신발 기업에 종사하는 조선족들외 복무업종으로 나가는 조선족들이 많습니다.

정치나 법학,의학 같은 분야는 벨도로 하더라도 기계공학 분야 인재들이 너무나 적어요.
힘들고 머리를 쓰는 일은 하지않으려고하니 자연히 조선족인재가 적어질수밖에...
LV 1 천상천하
언어타령만하다보면 언제 출세하겟는지 ? 솔직히 중국에서 중국말을 잘하는 조선족이 몇이 없더구만  한국말도 터덕터덕 중국말도 그럭저럭 어느하나 정통한 언어가 별로던데 白岩松은 몽골족이만 중국무대에서 한족보다 한족말 잘하고
그리고 언어는 교류의 수단이지 그무슨 물질 문명과 과학기술을 창조하느것도 아니고 그저 무역회사에서 언어로 무역이나 종사하면 출세하는것인지 ? 재간이 있으면 창업하던지 과학기술 인재가 되던지 아니면 어느분야에서 충중한 인재가 되여야 누가 승인하지
LV 1 사무라이
꼭 창업이나 창조, 그리고 한가지 분야에서 개척을 해야만 성공이라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건지요?

솔직히 성공이라는 기준이 참 우스운게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에 능력을 인정받아 취직해서 훌륭한 일자리를 구해도 성공이라고 볼 수 있고

또한 개인적으로 장사를 해서 부자가 되어도 나름 성공한 셈이지요.

설마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의 회사를 만들고 한가지 분야에서 개척을 해야만 성공했다 할순 없잔습니까?

요즘사람들은 성공의 기준을 너무 창업이나 업적 같은 것에 치중을 두는 것 같아 좀 씁쓸합니다.

다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타인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성공한겁니다.
LV 1 q
이 글은 무슨 의미에서 썻는지 잘 모르겠네요...대체적인 느낌이라면 조선족이 지력과 능력면에서 아주 뛰여나다? 꼭 마치 한국엔 인재가 없는것처럼 보이네요... 사람이란 자신이 어느만큼 노력하면 어느만큼 성과 거두는거지요, 지역과 나라를 떠나서요. 글에 비치는 조선족으로서의 우월감이 너무 맹목적이거 같아요.
LV 1 맨드리
위치는 그대루구 바뀌무 지위나 머 이런거 갯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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