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을 회억하여 (8) - 할아버지편 9. ‘좋은 일’(실화)

  • LV 1 마이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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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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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좋은 일’

‘좋은 일’이라 하는 날은 매년 음력 10월 10일 저녁이다. 이날은 신라때부터 전해지는 한해 풍작을 경축하고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감사드리는 날이다.

우리는 종묘사직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종묘는 역대의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사직단은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서울에 가 보면 경복궁 왼쪽에는 종묘가 있고 오른쪽에는 사직이 있다. 이것은 조선왕조가 성립되는 때 같이 세워진 것들이다. 그것은 종묘사직이 나라의 기틀이였기 때문이다.

이날은 어린 내입장에서는 일가친척들이 모두모여 재미있는 하루를 보내는 날이다. 그날에는 둘째숙부네, 셋째숙부네, 넷째숙부네, 고모네 그리고 5촌 백부(큰아버지)네등 식구들이 모두 모여 그야말로 집안이 들썽들썽하고 붐비였는데 또 녀성들한테는 엄청 분망한 날이기도 했다. 모든 친척들이 다 모이긴 하나 증조부(노할아버지)만은 그때 이미 80이넘은 고령이여서 못 오셨다.

오전부터 집안 녀자들은 떡방아를 찧고 떡을 하고 두부콩을 갈아 두부하고 깨기름도 짜고 여하튼 쉴 사이 없이 많은 음식들을 만들었다. 저녁이 되면 기름등잔으로 10간이나되는 집 방방곡곡을 대낮같이 환이 밝히었는데 심지어 창고, 방앗간, 우사까지도 환하도록 밝히였다. 등불을 밝힌 뒤 어머니는 밖에 나가 집 네기둥 모서리에서 작은 상에 제물을 차려놓고 두손을 마주하고 새해에도 풍작을 거두고 만사가 무사하기를 기원했다. 

이렇게 '좋은 일' 절차를 마치고 나면 집안에서 음식잔치가 벌어진다. 이날은 모인 식구가 적어도 스물대여섯명은 되는데 애들이 반을 초과했다. 그래도 그때 나는 큰 아이축에 속했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10간집 어디에나 음식상이고 여기저기 모두가 조용한 곳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웃방에서 독상을 받았는데 숙부들은 할아버지의 위엄때문인지 모두 근전에 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면 놀음판이 벌어진다. 5촌 백모는 활약가였는데 그가 가는 곳이면 웃음꽃이 꺼질줄 모른다. 놀이는 주요하게(주로) 화토와 윳놀이었다. 백모(큰어머니)는 숙부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윳판에서 흥을 돋구고 숙모들과 고모는 화토로 록백 구(600점 따기)를 놀았는데 나는 숙모들과 놀기를 좋아했다. 둘째 숙모와 어머니는 별로 놀음판에 참가하지도 않고 정주간일에만 열중했다.

정주간에서 놀음판이 벌어지고 웃음소리 집안이 깨여질듯 하고 작은 애들이 방과 방 사이를 뛰여 다니면서 소리치며 소란피워도 할아버지는 웃방에서 못들은척 모르는척 나와 보지도 않았다. 이것은 아마 할아버지의 대남자주의의 위엄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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